1. 신기루
글 : 치셀 | 표지 :야마이
* 우주 전쟁 배경으로 젠킬 주요 인물들이 모빌수트(건담 같은거...) 타고 다니는 SF물입니다.
"장비는 고맙게 받았다."
라는 고백이 입에서 떨어지는 순간 소대원들의 얼굴에 희비가 엇갈렸다. '비'보다는 '희'에 가까운 사람이 많았고 여러 의미로 예상했던 반응이었기에 나다니엘 픽 소위는 당황하지 않고 말을 이을 수 있었다. 어쨌든 소대원들은 그들의 소대장 앞에서 내기에 건 물건을 주고받지 않을 정도의 존경심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난 이미 베아트릭스로서 각인된 오란쉐가 있다. 따라서 알 수 없는 경로로 입수된 장비의 효용성은 심각하게 의심되는 상황이다."
내일쯤 자신의 해병대 경력을 스스로 살해할 계획이라말하는 사람 치곤 제법 담담한 표현이었다. 천하의 리컨마린이라고 해도 이런 엿같은 상황까진 예측하지 못했던 모양인지 희죽거리던 얼굴들이 그 상태 그대로 굳어졌다. 픽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3시간전 정맥에 집접 투하한 O펙터의 효과가 다하지 않았다는 훌륭한 증거였다.
"Sir. 질문이 있습니다."
"No."
"......"
새로운 팀 미션이 주어진지 고작해야 48시간이 흘렀을 뿐이다. 픽에게 도착한 '장비'의 제작 자체는 어려운일이 아니었지만, 군에서 무려 공용 네트에 설계도를 풀어놓는데에야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장비를 완성하기 위해선 보관등급 S 이상의 금속 물질이 적어도 3종 이상 필요했고 그 물건들은 당연히 빌어먹을 비품실이나 PX에선 구입할 수 없었다. 픽은 소대원들이 어떻게 자신에게 이 장비를 보내왔는지 물을 정도로 눈치없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 사실을 묵과할 만큼 멍청하지도 않았다.
"해산."
픽의 무신경한 명령에 콜버트가 다가왔다. 픽이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베아트릭스 특유의 예민한 감각에 브랫 콜버트란 남자는 직관과 이성이 씨실과 낱실처럼 뒤엉킨 매력적인 테피스트리처럼 보였다. 픽처럼 구체적인 표현은 아니었어도 대다수의 소대원들이 그 의견을 공유하고 있다는걸 알았다. 픽은 그저 콜버트의 입만 틀어막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예상대로였다. 콜버트 하사가 입을 다물고 몸을 돌리자 모두가 조용해졌다. 지잉-하는 전자음과 함께 브릿지의 문이 열리고 소대원들이 모였을 때처럼 소리 없이 흩어졌다.
네이트는 사병들을 위한 유일한 복지시설 중 하나인 브릿지의 창으로 시커멓게 번쩍거리는 우주를 바랍왔다. 빌어먹을 웜홀. 좇같은 행성 먼지들. 그렇게 온갖 감정이 낱말의 형태로 의식 위로 떠올랐다 사라졌다. 픽은 문득 베아트릭스로 각성한 뒤 찾아갔던 테임닥터의 말을 떠올렸다. 그는 인지가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원시적인 형태라고 말했다. 처음 O펙터를 투여받던 날 픽도 그 의견에 동의했다. 감정에서 생겨나는 모든 반응, 그러니까 화끈거리는 얼굴이라던가, 알 수 없는 울렁거림, 달아오르는 눈가, 무언가가 울컥하고 올라오는 목구멍의 느낌 따위가 배제된 감정이란 건 초등학교 애새끼의 그림 카드에 그려진 단순화된 그림 만큼의 진실성도 없었다. 그런 것들을 느껴 본지도 오래전이었지만 픽은 차라리 이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베아트릭스였고, 베아트릭스가 감정적 폭풍에 휩쓸리는 것처럼 위험한 일은 없었던 것이다.
베아트릭스는 극단적인 힘을 가진 초능력자로 사춘기 이전에 발현하는 것이 보통이며 피에 기생하는 일종의 바이러스가 변의의 원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빌어먹을 조그만 생명체는 숙주의 감정에 반응해 일을 쳤다. 손에서 불도 나오고 얼음조각도 날아가고 토네이도도 생겨나고 했다. 즉 모든 개체마다 발현 양상이 달랐다. 공통점이라면, 하나같이 섬세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었다. 교통사고로 아이를 잃은 잠재적 베아트릭스가 각성과 동시에 마이애미를 날려먹은 사건은 그 중에서도 최악의 사태에 속했다. 제어는 원칙적으로 불가능했다. 아무리 자제심이 깊은 사람이라도 그것은 표현해 한하는 것이지 감정 그 자체를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인간 시한 폭탄. 게이들에게 붙은 수많은 오명에 비하면 별로 치욕적일 것도 없는 별명이었다. 어쨌든 발현자의 99%가 남성인 베아트릭스들은 게이와 함께 2세기 넘게 인권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었다. 공공연하게 베아트릭스를 상대로한 마녀사냥이 허용되던 시기도 있었지만 세상은 원래 남에 일에 관심많은 멍청이들에 의해 돌아가게 되어있는 것이다. 인권운동가들은 돈 못받은 창녀처럽 집요하게 권력자들의 좇을 빨아댔다. 마침내 군대가 움직였다. DADT는 베아트릭스와 게이를 공평하게 아우르는 군의 규정이었고 나다니엘 픽을 이 똥같은 상황에 밀어넣은 원인이기도 했다.
"LT."
"거니. 브랫에게 반품 기간을 묻는게 좋겠어."
"괜찮으십...."
"응."
말이 끝나기도 전에 픽이 대답했다. 이름보다 거니라는 애칭이 익숙한 마이크 윈 중사가 특유의 시선으로 픽을 바라보았다. 픽에게서 추가적인 설명을 얻어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는 방법이었고 이번에도 성공적으로 작용했다.
"테임닥터의 처방대로 일어나자마자 O펙터를 정맥주사로 투여했어. 감정적인 동요는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없으니 괜찮지 않을 이유도 없다는 뜻이야. 있어서도 곤란하고."
"어쩌실 겁니까?"
"남자와 좇질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거니를 택하지는 않을게."
불명예 제대를 암시하는 농담이었지만 마이크는 웃지 않았다. 베아트릭스 조크는 거지같군. 픽은 생각했다. 가지고 있는 선택지가 지나치게 적었다. 해병이 된 이후 단 한번도 충분한 선택지를 가져본 적은 없었지만 정말이지 이만큼 엿같았던 적도 없었다. 우주 함선인 것이다. 좁은 함선내에 정상적인 사내놈들 여럿을 풀어놓은 것 만으로 충분히 위험한데 감정에 따라 도시 하나도 날려버릴 수 있는 초능력자가 동승한다는건 말도 안되는 개소리였다. 오란쉐의 혈액을 정제한 O펙터가 실용화 된지도 100년이 넘었지만 99%의 피임률을 자랑하는 콘돔을 뚫고 아기가 태어나는 것처럼 베아트릭스가 싸질러 놓을 수 있는 파괴와 죽음의 공포는 불신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소대원들은 그 불신을 이겨낼 만큼의 신뢰를 보였다. 픽은 그걸로 충분하다고 여겼다. 그에겐 계약한 오란쉐가 있었다. 콜버트 비롯한 소대원들이 해병다운 태도로 들여온 '스네이크'를 생착시킬 수 없는 몸이란 의미였다.
"LT. 불명예 제대의 다양한 방식 외에 다른 선택지는 생각해 보신 적 없습니까?"
"명예 제대를 할 적절한 방법이 지금으로선 떠오르지 않아."
"......."
"O펙터는 30일 분량이 남아있어. 원래대로라면 충분하고도 남을 분량이지만 웜홀 폐쇄 임무에 차출될 경우 얼마동안 함선 안에 머물러야 하는지 불투명해져. 이런 상태로 내 소대와 함께 있을 수는 없어."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DADT규정에 따라 중대 지휘본부는 나다니엘 픽의 사적인 문제- 베아트릭스란 성향을 고려할 의무는 없었다. 그러나 지휘본부라면 자신의 해병을 어디에 활용하는 것이 적절한 지는 알아야 하는 것이다. 아니 적어도 어디에 활용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지 정도는 알아야만 했다. 베아트릭스를 기한없이 우주에서 대기해야 하는 임무에 배치하는 것은 폭탄을 가득실은 우주선에서 불꽃놀이를 하는것과 비슷한 멍청이 짓이었다.
"LT. 무례한 질문인건 알지만 LT의 오란쉐와..., 그러니까 어떤식으로든 접촉할 수는 없습니까?"
"특급 우편으로 받을 수는 있어."
"...Pardon. sir?"
"가장 최근에 업데이트된 의료 등급 기준으로 봤을 때 인간 이하의 판정을 받을거야. 따라서 특급 우편으로 이송받는게 가능해." 물론 손상 가능성이 높아지니 취급 주의 표시를 붙여야겠지-따위의 생각을 곰씹으며 픽이 대답했다.
"오는데 걸리는 기간이 어느 정도 입니까?"
거니의 질문에 픽의 눈썹이 미묘하게 움직였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냔 뜻이었고 거니 또한 그 의미를 파악했지만 굳이 말을 덧붙이진 않았다. 거니는 진심이었다. 그들은 우주에 있었다. 거기다 조만간 모함으로부터 30광년은 떨어진 웜홀에 홀로 파견될 예정이다. 이 험비-소셜 크루즈만도 못한 거지같은 비행선을 타고 말이다. 이 비행선에 유일하게 좋은 자원이 있다면 그것은 타고 있는 마린들 뿐이었고 그 중에서도 픽은 대체불가능한 자원에 해당했다.
"내 오란쉐가 오면. 그럼 어떻게 할 생각이지?"
"아시다시피 여유공간이 조금 있습니다."
"없어."
"미사일 선적량에 문제가...."
"없어."
픽이 다시 한 번 대답했다. 병신같은 그의 상사는 사칙연산을 함에 있어서도 문제를 터트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픽은 그 부분에 대해서 숙지하고 있었고 자신이 소대를 떠나기 전 해야 할 일이 바로 이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든 채워 넣는 것이라 여겼다. 여기까진 문제가 없었다.
"거니. 아무래도 내가 내 소대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있는 모양이군."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똑바로 서 있던 픽의 머리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뇌가 있는건지 의심스러운 마더퍼커 새끼가 잘못 계산한 미사일의 수. 부드러운 경로로 채워넣은 무기. 거니도 알고 있어야했다. 공개 네트워크를 이용한 인터넷 쇼핑은 픽의 전문분야가 아니었다. 그는 그저 부드러운 루트를 암시하는 약간의 서류를 준비했다. 그 외의 부분을 처리한 것이 누구인지 알아낼 필요는 없었다. 때 맞춰 상자가 도착한 것이 중요했을 뿐이다. 때 맞춰....
"미사일이 아니었군."
"이제 스네이크는 필요 없지 않습니까."
"SOP에 따르면 독립 임무를 나가는 각 함선은 적어도 한 대 이상의 스네이크는 배치하여 만약의 폭주 사태에 대비하도록 되어있어."
말을 하면서도 헛소리라고 느꼈다. 아니 헛소리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빌어먹을 O펙터를 탓하며 욕지기를 내뱉으면서도 낭패감은 없었다. 느끼지도 못할거라면 왜 끊임없이 생각하게 되는 걸까. 문득 피곤함을 느꼈지만 그것도 고작해야 버석하게 마른 단어일 뿐이었다. 거니가 말없이 픽의 무표정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픽은 부담감, 미안함, 고마움. 따위의 단어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걸 방치했다. 침묵은 부담스럽게 길어지고 있었고 둘 다 비효율적인 것이라면 질색을 하는 사람들 이었다.
"오늘 21시 전까지 결정하지."
픽이 더이상의 참견을 거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거니는 머리속으로 출전시간과, 픽이 정한 데드라인 사이의 간격을 생각했다. 픽은 허튼소리를 하지 않았다. '결정하지'라는 말은 아직까지 결정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있다는 의미였고 그건 21시 전에 결정을 내릴 경우 픽의 오란쉐를 함선으로 소환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 시간 범위 안에 있는 거주 행성은 수가 많지 않았다.
"어떤 결정을 내리시건 원망하는 사람은 없을겁니다."
"알아."
거니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브릿지를 빠져나갔다. 21시까진 약 2시간의 여유가 남아있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브릿지 폐쇄용 패널 옆에 기대서 있던 콜버트가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거니는 움직일 수 없었다. 이 빌어처먹을 고물 우주선의 주포보다 훨씬 공격성이 높아 보이는 콜버트의 시선 때문은 아니었다. 최대 36개월의 독립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디자인 된 우주선의 특성이 문제였다. 어쨌든 선원들이 서로에게 질려 미쳐버리거나 독안에 든 쥐처럼 공격성을 드러내지 않도록 최소한의 개인 공간을 갖춰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그 외의 공간- 거주구역의 통로 같은 곳은 한계에 다다를 정도로 좁아질 수 밖에 없었다. 콜버트는 당연히 그 사실을 십분 활용하고 있었고 거니는 한숨을 내쉬며 그의 소대장이 한 말을 전달하였다.
"축객령이네. 21시까지."
"멋지군요. 빽빽거리며 아빠 어디갔냐고 징징대는 꼬꼬마들을 3시간동안이나 달래줘야 한단 말입니까?"
"자네가 자애로운 어머니가 될 차례겠군."
"앞치마가 없는게 아쉽군요. 그렇게 차려입은 전 완벽한데 말이죠."
대화의 수준이 점점 낮아지자 거니는 별다른 대답없이 손을 흔들며 콜버트를 지나쳤다. 콜버트는 그 자리에 남았다. 잠시 굳게 닫힌 브릿지의 문을 노려보며 그는 스스로의 초조함을 애써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실패였다. LT가. 당장 내일부터 민간인이 되어 외계인 년들이랑 그짓하는 히피들 사이로 숨어드는 것과 이곳에 남는 것 사이에서 무려 선택이란걸 할 수 있다는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충격적이었다.
오란쉐. 베아트릭스와 비슷한 시기에 갑자기 나타난 이들 역시 혈액에 기생하는 특별한 바이러스가 원인이었다. 다만 장르가 좀 달랐다. 베아트릭스가 싸구려 슈퍼히어로물이라면 오란쉐는 러브코미디였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을 전달받을 수 있었고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전달할 수도 있었다. 뭐 영화였다면 달달하게 연애 좀 하다 침대에서 끝났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녹치 못했다. 각성한 오란쉐는 조건만 충족하면 교미에 접어든 개새끼의 성욕에도 반응했다. 그때 오란쉐에게서 직접 체취한 혈액을 정맥주사로 투여할 경우 동물이 느끼는 강렬한 성감을 그대로 전달 받을 수 있었다. 인간 마약. 그게 그들의 별명이었다. 실제로 오란쉐들만 전문적으로 납치한 뒤, 내장기관과 뇌만 살려둔 채 쾌락 중추에 전극을 꽂아 흥분한 상태에서 체취한 혈액을 비싼값에 정제에 팔아넘기던 엽기적인 범죄단이 적발된 일도 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일단 오란쉐로 각성한 뒤 정상적인 사회생활 같은건 아예 불가능하다고 보는게 좋았다. 지하철 바퀴벌레의 성생활에도 질질 싸는 판에 사회생활이랄 것이 있을게 뭔가. 그러나 다행이도 베아트릭스와 오란쉐가 우연히도 섹스를 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세상에서 핍박받는 두 돌연변이가 어쩌다 그런 기특한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결정이 두 장르의 돌연변의들을 구해냈다. '각인'이었다.
"브랫! 어떻게 나한테 그럴수 있어요! 이 악날한 유태인 착취자 새끼 같으니라고! 그. 뭐. 오 씨발! 오란쉐인지 뭔지 하면.. 그러니까 그건... 그거잖아요!!"
"레이. 개소리를 할때에도 최소한의 룰이란게 있다. 적어도 너 스스로는 그 말을 이해하는 수준이어야 하지 않겠냐."
"젠장 브랫~! 난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요! 당신이 이 좋은 친구 레이레이에게 LT일 까맣게 숨기고 어디서 순금 좀 구해와라 했을때 제가 뭘 했는지 기억도 못할거라면 그 빌어먹을 호모같은 입에 좇이나 쳐넣고 침이나 질질 흘리는게 나을걸요!"
레이가 양팔을 벌린채 항변했다. 그나마 트럼블리의 몸에 부딪쳐 오른쪽 팔은 벌리는 시늉만 한 상태였다. 콜버트는 대화를 포기하고 사내놈들로 득시글 거리는 자신의 선실을 빠져나왔다. 시끄러운 항의 소리가 두터운 선실 벽에 막혀 수그러들었다. 팀러더인 그의 선실은 다른 상병들에 비해 그나마 넓은편이었고 덕분에 브릿지를 빼앗긴 브라보 소대원들은 당연하다는 듯 그의 선실에서 버글거리고 있었다.
[최종 논문을 제출 못하고 있어.]
그러나 좁은 복도에서의 시간도 길게 이어지진 않았다. 흔한 콜사인도 생략한 퉁명스런 목소리가 외이에 이식한 통신기를 통해 전달되었기 때문이었다. 왜 당연하다는 듯 나에게 이야기를 하는건가-라고 생각했지만 콜버트는 최대한 이성적인 목소리로 응대하려 노력했다. 이 소대의 유일한 군의관인 브라이언은 현재 이성을 유지하기 힘들 정도의 심각한 수면 부족현상을 겪고 있었다. 군용 인트라넷으로 6개월 짜리 테임닥 자격증 코스를 일주일만에 해치우려고 하면 흔히 맛볼 수 있는 현상이었다.
"데드라인이 몇시라고 했죠?"
[지구 시간으로 2시간 후.]
"아슬아슬 하군요. 결정은 21시까지 내려주신다고 했습니다만."
[좀 빨리 내려 달라고 해.]
그대로 연결이 끊어졌다. 젠장. 젠장. 콜버트는 자신의 꼴이 퍽 우습다고 생각했다. 그는 소대의 그 누구보다, 심지어 군의관 보다 LT의 '특성'을 먼저 알아차린 사람이었다. 물론 소대의 그 누구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브랫! 이대로 가다간 분홍색 튀튀를 입고 발레하는 당신 꼴을 보게 될것 같다니까요! 그냥 받아들여요! LT도 평범하게 여자 거기 빨고 싶어하고 가끔씩 불건전한 망상을 하면서 자위 할거라는걸 좀 받아들이란 말이에요!]
레이의 생각과는 달리 콜버트도 그 정도는 받아들이고 있었다. 다만 그가 가진 베아트릭스에 대한 인식이 평범한 마린들보다 조금 못한 편이란게 문제였다. 다시말해 그는 베아트릭스를 개새끼에게도 발정한다는 미친 돌연변이로 보고 있었다. 여러모로 보나 LT에게 어울리지 않는 수식이었다. 레이는 몇번에 걸쳐 팀리더가 가진 LT에 대한 종교적 믿음을 깨트리려 시도했다. 순전히 닭살이 돋아 죽을것 같은 스스로를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실패는 정해진 수순이었다. 그건 어느 순간 부터 농담거리로도 올라오지 않게된 부분이었다. 남의 약점를 후벼야할 귓구멍 정도로 보는 이들에게 이것은 정말로 이례적인 일이었다. 누구나 알고 있었다. 아이스맨의 푸른 눈은 한결같은 방향을 향했다. 그 눈이 이른바 워리어 정신에 투철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을 때를 제외하곤 말이다. 그는 대체로 언제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지만 어쨌든 리컨마린으로서 훈련받은건 브랫 콜퍼트 뿐이 아니었다.
[브랫. 까놓고 말해 안 받아 들이면 어쩔거에요. 게이가 해병에 들어오는 시대라고요! 이 늙은 해병이 내 빌어먹을 유태인 팀 리더가 캬라멜 마끼아또나 쳐 마시는 호모란걸 받아들인 이후 해병대는 예전의 순결을 잃었어요. 여기서 소대장이 돌연변이란걸 받아들이는게 뭐 그리 이상한... 아 젠장! 지금 내가 받아들인다는 표현썼어요? 진짜 게이같네! 지금 당신 게이병이 나한테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뭐 좀 느끼는거 없냐고요!]
물론 콜버트도 자신의 문제점은 파악하고 있었다. 30분씩 끊어낸 3시간의 토막잠에서 깨어난 후 그는 영 도움이 되지 않는 레이의 말을 신속하게 무시한 뒤 브라이언의 관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픽의 특성을 일종의 해결해야 하는 문젯거리로 여겼다는 뜻이다. 사실 그런거라면 확실히 콜버트의 전문분야라고 할 수 있었다. 그에겐 언제나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재해 있었기 때문이다. 부족한 태양열 축전지. 부족한 선적 미사일. 부족한 대가리들의 신경 세포.
항상 그래왔듯 콜버트는 그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해결책을 내어놓았다. 스네이크는 현존하는 베아트릭스 제어수단 중 가장 효과가 높다고 알려져 있었다. 콜버트는 손수 그것을 제작했다. 직접 고안한 집적회로를 이용해 장비의 사이즈를 조금 줄였을 땐 성취감까지 느꼈다. 헐렁한 군복안으로 착용하면 그럭저럭 숨길 수도 있을 정도의 사이즈였다. 안정화 물질중 하나를 구하기 위해 미사일을 분해해 미량의 금속물질을 빼돌릴 때의 기분은 어떠했던가. 확실한건 지금보다 나았다는 거였다. 그때는 적어도 자신이 쓸모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지금은 달랐다. 완전히 달랐다. 그는 그의 베아트릭스 소대장을 찾아가, 소대에 남기로 결정할 경우를 대비해 군의관이 테임닥터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게끔 30분 일찍 결정을 내려달라고 말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Sir.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들어와.]
"질문도 하나 있군요."
[해.]
"제가 브릿지 앞에 있는거 어떻게 알았습니까?"
대답대신 픽은 웃음을 터트렸다. 의도와는 다르게 짧고 메마른 웃음이었고 픽은 웃기를 포기했다. 침묵이 흘렀다. 대답을 기다리던 콜버트는 들어가기로 마음 먹었다. 꼭. 굳이. 들어갈 필요는 없었다. 사실 원래 계획도 괜히 방해할 것 없이 간단하게 통신기를 통해 필요한 사실을 전달하고 말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몸은 하릴없이 브릿지 앞까지 움직여 왔고 픽의 한마디에 냉큼 자신의 위치를 고해바치기 까지 했다. 이제와서 돌아선다는 건 좀 비겁하게 느껴졌다. 당연히 잠겨있을거라고 생각한 브릿지의 문은 open버튼을 누르는 것만으로 간단히 열렸다.
문이 열리고 익숙한 장신의 몸이 다가오는 동안 픽은 창가에 선 자세 그대로 움직이지도, 시선을 주지도 않았다. 다짜고짜 축객령을 내리더니, 어디있는지도 명확하지 않은 사람을 들어오라 한 것 치곤 무심한 태도였다. 콜버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웃다가 마는 건 저에게서 전략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겁니까? O펙터를 맞으면 효과가 다하기 전까지 아무런 감정도 못느낀다고 하던데요. 웃음이 나올정도면 새걸 맞는게 낫지 않겠습니까? 솔직히 소름끼치는군요."
"난 외이에 통신기를 삽입하지 않았고 돌출형 통신기를 이용할 경우 동일 기종의 장비가 다가올 경우 미미한 잡음이 섞이게 돼. 질문에는 대답했으니 드릴 말씀을 듣고 싶군."
물론 콜버트도 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외이에 반 영구적인 통신장비를 삽입하기 전 직접 외부 통신장비를 이용해 실험해 보기도 했다. 잡음을 통해 아군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면 편리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결론은 토끼로 다시 태어나기 전엔 저게 쓸모있을 일은 없다는 것이었다. 아주 주의를 기울이면 구분할 수 있었지만 신경이 분산되는 위급상황에선 무리였다. 잡음의 크기는 아주 작았다. 픽 중위는 토끼임이 분명했다. 콜버트의 침묵이 생각보다 길어지자 픽의 한쪽 눈썹이 들려올라갔다. 콜버트가 기계적으로 입을 열었다.
"30분. 적어도 15분 정도 일찍 결정을 내려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왜?"
"군의관이 자격증을 따려면 최종 논문을 전송해야 하는데 아시다시피 이곳 통신 상태가 그렇게 좋지는 않습니다."
"이해를 못하겠군."
"그러니까...."
당신이 베아트릭스라는 걸 알고, 혹시나 미쳐 날뛰게 될 때를 대비해 브라이언이 일주일 전부터 테임닥터 과정을 듣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 없었다. 픽 중위를 위해 만들었던 스네이크가 무용지물로 밝혀진 지금 모든 것이 당신을 위해서였다고, 이 끔찍한 사생활의 침해를 이해해야 할 뿐 아니라 예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소대에 남아야 한다고 뻔뻔하게 말하는건 지독한 위선으로 느껴졌다. 콜버트는 처음으로 자신의 소대장이 이 상황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지에 대해 생각했다. 숨겨운 치부.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했을 나날. 갑자기 깜짝선물마냥 도착한 베아트릭스 전용 장비. 해병의 기준으로 보더라도 이건 엿을 먹이는 것에 가까웠다.
"하사. 난 탓하자는게 아냐."
한참만에 입을 연 픽이 말했다.
"왜 탓하지 않습니까?"
"뭘 탓하라는 거지?"
픽은 정말로 묻고 싶었다. 무엇을 탓해야 하는가? 베아트릭스란 걸 알아차린 것? 스네이크를 준비한 것? 아무런 선택지도 없을 거라고 여긴 상황에서 희망을 보여준 것? 콜버트가 하려던 말을 막은 눈짓으로 막은 픽이 다시 한 번 설명을 요구했다. 콜버트는 건조한 태도로 군의관이 베아트릭스의 의료적 상황을 책임지기 위해 테임닥터 자격증 과정을 듣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6개월 코스이긴 하지만 엄연히 SR훈련과정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코스를 수료하기 위해선 소논문을 제출해야 한다고 했다. 픽은 몇일 전 브라이언이 매우 뻔뻔한 태도로 자신에게 혈액과 소변을 요구하던 상황을 떠올렸다. 아마 소논문의 제목은 우주 함선에 탑승한 베아트릭스의 혈중 B펙터 변화 정도가 아니었을까? 대기중이라고 해도 출전을 코앞에 둔 상황이였다. 해야할 작업은 산적해 있었을 터다. 6개월짜리 의료 과정을 일주일만에 수료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롭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그냥 지금 논문 보내고 과정 수료하라고 해."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 고생을 하고 자격증도 못받으면 억울할 것 같은데."
"중대 전체가 알게 될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베아트릭스란걸 말이지."
무의식중에 콜버트가 생략한 주어가 픽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콜버트는 어딘가 깨진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알았어."
픽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돌아선다. 끝. 대화종료. 축객령. 콜버트는 무의식중에 픽의 어깨를 잡았다.
"Sir. 대체 어떻게 하고 싶은 겁니까. 이런걸 원하고 스네이크를 보낸게 아니었습니다. 단지...,"
"브랫."
"이제와서 믿어 달라기도 뻔뻔하지만 이게 당신을 엿먹이기 위한 질나쁜 장난 같은건 결단코 아니었단 말입니다."
갑자기 튀어나온 진심에 픽은 대체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오해를 풀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픽은 물론 자신에게 전달된 스네이크 장비를 질나쁜 장난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그러기엔 너무 고가의 물건이었고 엿을 먹이자면 더 좋은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알아."
"... 그럼 대체 뭐가 문젭니까."
뭐가 문제냐고.
픽의 눈동자가 순간 허공을 더듬었다. 알리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저 그 뿐이었다. 베아트릭스인걸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브랫이 생각하는 것처럼 기계 하나로 제어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고, 브라이언의 생각처럼 지속적인 관리와 치료를 통해 극복할 수 있는 질병도 아니었으며, 하물며 대다수의 상병들이 생각하는 것 같은 괴이쩍은 성격적 결함 따위는 더욱더 아니었다.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게 불가능 하다면 차라리 떠나고 말겠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문제는 없어 하사."
내 오란쉐가 교통사고로 팔다리가 잘려나간 채 식물인간이 된 17살짜리 여자애라는 것? 그애를 주기적으로 강간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 강간당하는 여자애의 목에 두툼한 주사기와 전기 펌프가 꽂혀 있다는 것? 내 좇이 여자애의 다리 사이를 드나드는 사이 윙윙거리는 소리와 함께 빨려나가는 피를 멍하게 바라본적도 있었다는 것? 이곳에 오기 위해선 가능한 많은 양의 O펙터가 필요했고 일주일의 휴가 동안 여자애는 거의 치사량에 가까운 피를 잃어야했다는 것? 어느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인지 픽도 알지 못했다. 문제가 아닌 것이 없었고 따라서 그는 그저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해결할 수 없는 것들 뿐이었다. 콜버트는 거의 상처를 입었다는 것에 가까운 표정으로 잘됐군요 따위의 말을 중얼거렸다. 픽은 순식간에 고통스러워 졌다. 홀로 남은 뒤에도 고통은 머릿속에서 수그러들지 않았으나 그의 몸에 흐르는 피가 그것을 느끼도록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방법으로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소지하고 있는 군용 나이프로 솜씨 좋게 팔목을 그은 픽이 손톱으로 상처를 헤집었다. 결정을 내리기까지 1시간도 채 남아있지 않았다.
"yo 브랫. 너네 애들이 니 선실에서 미친짓 하고 있던데."
"......."
"...너도 좀 하지 그래?"
에스페라가 검은 얼굴에 사뭇 진지한 표정을 떠올린 채 제안했다. 콜버트는 말없이 걷기만 했다. 에스페라 역시 속도와 방향을 유지했기 때문에 그 둘은 곧 물리적 한계에 부딪치게 되었다.
"문 안잠겨 있더라."
좁은 통로에 마주본 채로 기묘한 대치상태를 유지하던 콜버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뜬금없는 소리에 잠시 인상을 찌푸렸던 에스페라는 그것이 곧 해산을 명령한 소위와 관련된 이야기란 걸 알아차렸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미련하게 거길 또 왜 기어들어갔냐란 것이었다. 말은 안했지만 표정으로 충분했는지 콜버트가 히죽하고 웃어보였다. 미친새끼가. 그가 보기에 콜버트는 요 근래 정상이 아니었다. 사실 소대에 있는 누군들 안 그러랴 싶긴 했다.
그들이 타고온 우주 함선의 정식 명칭은 HUM-322431B. 통칭 험비라고 불리는 중형 수송선이었다. 뭐 수송선입네, 소셜 크루즈네 오명이 많았지만 사실 나쁜 우주선은 아니었다. 미사일을 실을 수 있었고 빌어먹을 외계인의 엉덩이에 기념할 만한 한방을 날려줄 수도 있었으며 항성간 이동도 가능했다. 그러나 모빌 수트를 실기엔 너무 작았다. 콜버트의 존중할 만한 계산에 의하면 고작해야 5대가 한계였다. 그럼 그만큼만 실어서 돌려 쓰면 되지 않냐는 보급 중대의 개소리에 그들은 하나같이 웃으며 좋은 아이디어라는 식으로 반응했다. 어차피 모빌 수트는 조립과 정비, 수리와 폐기까지 리컨 마린 내부에서만 이루어졌다. 모름지기 해병이라면 아무리 멍청한 신병이라도 423개의 주요 부품을 체크해 자신의 몸에 꼭 맞는 모빌 수트를 제단해 낼 수 있어야 했다. 그러니까 이론적으로 말해서 보관된 상태의 모빌 수트를 피팅된 상태로 바꾸기 위해선 리컨 마린 한명과 24시간이 필요했다. 24시간 이었다. 초기화를 위한 12시간과 피팅을 위한 12시간.
아이스맨이 세운 9시간의 피팅 기록을 8시간 40분으로 단축한 것이 LT였다. 한동안 LT의 T는 테일러의 T라는 개소리가 유행한 적도 있었지만 이런 초유의 사태에서야 8시간 40분이건 9시간이건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소대는 나름대로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애썼다. 일단 시급한건 함선을 운전할 인력을 자체적으로 길러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들 운전면허 정도는 가지고 있었으나 항성간 이동이 가능한 함선을 운행하는 건 다른 문제였다.
"갓! 뎀잇! 지금 그게 나한테 할 소리에요?! 내 뇌는 고등학교때 이후 아무도 손댄적 없는 순결한 처녀지라고요! 그 연약한 곳에 저 빌어먹을 험비의 굵고 뜨거운걸 박아넣겠다니! 오 씨발. 브랫! 차라리 내 엉덩이에 당신걸 박고 말겠다고요!"
레이 만큼은 아니었지만 릴리와 브랫도 각각의 이슈에 대한 거부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사실 아무도 공군처럼 머리에 구멍을 뚫어 함선과 다이렉트로 전자신호를 주고 받고 싶지는 않았다. 그들 또한 최첨단의 과학 기술로 전쟁을 수행하는 이들이었으나 최소한의 자부심은 있었다. 모빌수트는 결코 인간의 탑승 없이 움직일 수 없는 물건이었다. 그들이 보기에 공군조종사 라는 건 모빌 수트에 달린 423번째 부품 같은 것이었다. 망가지면 곤란하니 소중하게 관리하지면, 결국은 갈아끼우면 그만인 부품. 심지어 현존하는 모든 군사 기술에 관심과 애정이 지극한 콜버트 조차 그런 의견에 지지를 보내고 있는 형편이었으니 이러한 반응을 놀랍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결국 시간이 더 걸리는 길을 택하는 수 밖에 없었다. 군의 방대한 강좌 리스트를 헤매이며 지금부터 잠들지 않는다면 이걸 다 들을 수 있기는 할까 따위를 고민하던 레이와 릴리에게 신청한 적도 없는 외출 허가가 떨어진건 정확히 출전을 92시간 압둔 때였다. 어영부영 외출증을 수령하러 간 둘에게 픽은 민간 군수 업체에서 개발한 최면암시 코스의 팜플렛을 건네주었다. 등록이 끝난 상태였다. 동봉된 안내서에 따르면 하루 8시간 이상의 학습은 권장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었으나 아무도 그런것은 신경쓰지 않았다. 레이는 각성제를 물처럼 퍼마시기 시작했다. 다들 괴로워졌다. 그러나 부대에 복귀한 레이가 험비의 뜨겁고 굵은 것을 쥔채 조정을 시작하자 초반의 고통은 차라리 감미로운 것으로 밝혀졌다. 어쨌든 무사히 도착한 두명의 신입 조종사와 달리 최면암시 코스의 빌어먹도록 비싼 수강료 고지서는 결코 도착하지 않았다. 거니는 별다른 말 없이 세금 공제 해택이라도 받아보는건 어떻겠냐는 의견을 제시했다. 당시 막 소대에 부임해 서류더미에 파묻혀 있던 픽은 물끄러미 거니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거니는 그가 불러주는 고유 거래 번호를 적는대신 암기했다. 쓸 일이 자주 있을리란 판단 때문이었다.
"모빌 수트 보러 갔나?"
한참 상념에 빠져있던 에스페라는 한발 늦게 콜버트의 질문에 반응했다. 갑작스럽게 대화의 주제가 바뀐 것도 같았으나 꺼냈다가 본전도 못건진 LT이야기 보다야 훨씬 편안한 주제였기에 에스페라는 기꺼이 새로운 주제에 뛰어들었다.
"아. 잠깐 보고 왔어. 너네 팀도 시간날때 조정 좀 해두는게 나을 것 같은데."
아니면 잠이라도 자던가. 콜버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여분의 부품 수급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했다. 에스페라도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그렇다. 지금 험비에는 마땅히 있어야할 숫자의 모빌수트가 실려 있었다. 운전병 문제를 해결하자마자 픽이 시작한 모빌 수트의 경량화 개조 덕분이었다. 에스페라는 지금 생각해도 미친것 같았던 당시의 상황을 떠올렸다.
"모빌수트 경량화 작업을 할까 하는데 아이디어를 듣고 싶군."
레이가 들었으면 브랫을 뛰어 넘은 또라이가 나타났다며 3박 4일을 떠들 개소리였다. 이번만큼은 에스페라도 별다른 이의가 없었다. 출전을 92시간 남겨놓은 상황에서 태연한 얼굴로 헛소리를 하는 애송이 장교를 한두번 본것은 아니었으나 이정도 스케일로 좇뺑이를 돌리는 병신은 또 처음이다. 콜버트는 에스페라보다 조금 더 모빌 수트에 정통해 있었고 생각만으로 그치지 않았다.
"다함께 왼팔을 잘라내는게 좀 더 현실적인 대안이란 생각이 드는군요."
"하사의 현실성은 나와는 좀 다른 모양이군."
"그런것 같습니다. sir."
"한쪽 팔의 무게는 통계적으로 보았을때 전체 몸 무게의 4.3%에 해당해. 소대 전체가 양팔을 자른고 해도 모빌 수트 하나 실기 어려울것 같은데."
"그렇군요."
콜버트는 이제 웃고 있었다. 그러나 이빨을 드러낸 특유의 웃음은 곧 멈추게 되었다. 에스페라는 그때 이후 오고 가는 영어의 절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창피하진 않았다. 여긴 굶주린 해병들로 가득한 마틸다 우주기지였지 빌어먹을 MIT가 아니었다. 어쨌든 확실한 건 아이스맨이 중위에게 실시간으로 뻑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싸늘하게 가라앉아있던 그의 푸른 눈이 부담스럽게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에스페라는 차마 소리는 내지 못한 채 몇번이고 외쳤다. 게이다. 게이가 나타났다. 어쨌든 픽의 아이디어는 그럴싸 했다. 그는 대담무쌍하게도 리컨 마린용 모빌수트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통신장비와 관측 장비를 모두 제거할 것은 제안하고 있었다.
리컨 마린이라면 누구나 모빌 수트와 열병같은 사랑에 빠지는 시기를 거치게 된다. '그녀'와 자고 그짓까지 하는 사병에 대한 소문을 안 들어본 훈련병이 드물었고 심지어 브랫 콜버트 조차 그러한 사실을 진지하게 믿던 시기가 있었다. 눈치챘겠지만 훈련소에선 '그녀'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과 신뢰를 권장한다. 어차피 첫 출전을 마지막으로 사그라들게 될 감정임을 알기 때문이다. 한번의 포격으로 온도 조절 장치, 혹은 산소 탱크, 최악의 경우 압력 조절기가 망가져 산 채로 그녀의 몸안에 갖힌채 죽는 동료를 보는 것은 훈련소를 갓 나온 애송이을 제대로 된 병사로 바꾸기 위한 마지막 단계였다. 해병들은 그러한 종류의 죽음에 '복상사'란 별명을 붙였다. 그리고 보다 비현실적인 존재, 그러니까 섹시한 여자라던가 귀여운 여자 때때로 그저 여자란 존재에 열병을 느끼는 비참한 상태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브랫 콜버트는 예외였다. 그는 입대한 이후 한번도 쓰지 않은 휴가를 철의 여인에게 바쳤다. 아직까지 그녀와 그짓을 하며 오르가즘을 느끼는 상태인것 같았다. 그리고 에스페라의 의견을 덧붙이자면, 콜버트의 괴벽은 LT와 만남으로서 이제 마니악한 3p로 접어들어 있었다. 소대원들은 이제 그 건에 대해 농담하기조차 귀찮다는 의견이었다. 그들은 423개의 조정 가능한 부품을 포함해 건드리지 않는 것이 신상에 좋다고 주입받은 전체 회로를 들쑤셨고 거기서 의사 신경계의 일부분을 분리해내는데 성공했다. 실험체를 자청했던 콜버트는 두번이나 복상사를 당할질 뻔 했고 콜버트가 쪽잠을 자는 사이 단 한번의 탑승을 시도한 레이는 얼굴 반쪽에 뜨거운 키스를 받았다. 픽은 이 불미스런 사태를 유연하게 넘기는 지혜를 보임으로서 레이의 마음을 얻는데 성공했다. 그게 과연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13대의 모빌수트를 실을 수 있게 되었다. 픽은 16대를 실으라고 했다. 출력이 부족할 거란 거니의 지적에 그는 세이프티 마진을 언급했다. 과거 우주 함선 운용의 불확실성이 훨씬 높았을 시기, 여분의 출력을 남겨둔채 질량 제한이며 활동 계획을 세웠던 전통이 지금껏 남아있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모든 함선은 정해진 적정 용량보다 훨씬 많은 용량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다만 이 세이프티 마진이란 것 자체가 관례적인 것이었기에 마진을 정하는 스탠다드 따위는 없었고 함선마다 제각각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픽은 모든 함선의 세이프티 마진을 암기하고 있었다. 콜버트는 이제 거의 오르가즘을 느끼는 것 같았다. '재량적으로' 중량 문제를 해결한 그들은 남은 10시간을 피팅에 사용했고 대다수의 마린들이 자신의 최단 피팅 기록을 갱신할 수 있었다. 뭐 그런 보람도 없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출격 시기는 한없이 늘어지고 있었지만 말이다.
"어이. 넌 할만큼 했어."
에스페라가 자신의 선실로 들어가기 전 한마디 했다. 콜버트는 잠시 그를 응시하더니 아무런 제스쳐 없이 걸어갔다. 에스페라의 시선이 잠시 동안 동료의 등을 쫓았다. 그는 고개를 젓고는 선실로 들어갔다.
제너레이션 킬 여성향 소설지 (19금)
네이트 x 브랫
A5, 컬러표지, 무선제본, 70페이지 정도.
6000원 정도.
* 오리지널 초능력자 설정을 살짝 끼얹었습니다.
* 상하권이 분리될 가능성이 무척 높습니다.
* 마지막편을 제외하고 다 웹상에 연재할 것 같습니다.
* 아 맞다 그리고 초고 읽어주실 독자를 구합니다.
지난번에 셜록 쓸때는 주변에 셜록 보신 분이 많아서 해결이 되었는데 지금 제 주변엔 젠킬을 파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차마 부탁을 못하겠어요ㅋㅋㅋㅋ 황무지야! 여긴 황무지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
신청은 메일로 보내주시는게 빠른데 메일 보내는거 짱 부담이라는 분들이 많아서.. 그냥.. 덧글로 해주시면 되고요. 어떻게 하는거냐면 초고 읽으신 다음에.... 제가 채팅방에 불러서 1시간동안 막 괴롭히면서 질문을 합니다... 아 이걸 누가해 ㅠㅠㅠ 근데 이거 해주시면 책이 무룝니다... 원하지 않아도... 무료... 무조건.. 무료... 제가 참 저렴하네요..... 근데 글이 19금이라 제가 얼굴 아는분이 아니시면 성인인증을 해주셔야해요.... 헿... 사랑해요. 누가 신청해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튼.. 그렇습니다....
* 제가 냈던 책 중에서 다른책 가지고 싶은게 있으면 신청해주세요. 출력할때 같이 맡기면 되니까요! 단 행사장에 오셔서 직접 수령하셔야 합니다. 이건 선입금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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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정말 이걸로 반드시 꼭 무척 내고 싶은데 이래저래 정신적으로 위태로워서 예약을 받게 되었습니다. 도망치지마! 도망치지 말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세상에 남아있는 젠킬 팬분들아.. 저에게 힘을주세요... 아이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샘 플
"장비는 고맙게 받았다."
라는 고백이 입에서 떨어지는 순간 소대원들의 얼굴에 희비가 엇갈렸다. '비'보다는 '희'에 가까운 사람이 많았고 여러 의미로 예상했던 반응이었기에 나다니엘 픽 소위는 당황하지 않고 말을 이을 수 있었다. 어쨌든 소대원들은 그들의 소대장 앞에서 내기에 건 물건을 주고받지 않을 정도의 존경심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난 이미 베아트릭스로서 각인된 오란쉐가 있다. 따라서 알 수 없는 경로로 입수된 장비의 효용성은 심각하게 의심되는 상황이다."
내일쯤 자신의 해병대 경력을 스스로 살해할 계획이라말하는 사람 치곤 제법 담담한 표현이었다. 천하의 리컨마린이라고 해도 이런 엿같은 상황까진 예측하지 못했던 모양인지 희죽거리던 얼굴들이 그 상태 그대로 굳어졌다. 픽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3시간전 정맥에 집접 투하한 O펙터의 효과가 다하지 않았다는 훌륭한 증거였다.
"Sir. 질문이 있습니다."
"No."
"......"
새로운 팀 미션이 주어진지 고작해야 48시간이 흘렀을 뿐이다. 픽에게 도착한 '장비'의 제작 자체는 어려운일이 아니었지만, 군에서 무려 공용 네트에 설계도를 풀어놓는데에야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장비를 완성하기 위해선 보관등급 S 이상의 금속 물질이 적어도 3종 이상 필요했고 그 물건들은 당연히 빌어먹을 비품실이나 PX에선 구입할 수 없었다. 픽은 소대원들이 어떻게 자신에게 이 장비를 보내왔는지 물을 정도로 눈치없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 사실을 묵과할 만큼 멍청하지도 않았다.
"해산."
픽의 무신경한 명령에 콜버트가 다가왔다. 픽이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베아트릭스 특유의 예민한 감각에 브랫 콜버트란 남자는 직관과 이성이 씨실과 낱실처럼 뒤엉킨 매력적인 테피스트리처럼 보였다. 픽처럼 구체적인 표현은 아니었어도 대다수의 소대원들이 그 의견을 공유하고 있다는걸 알았다. 픽은 그저 콜버트의 입만 틀어막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예상대로였다. 콜버트 하사가 입을 다물고 몸을 돌리자 모두가 조용해졌다. 지잉-하는 전자음과 함께 브릿지의 문이 열리고 소대원들이 모였을 때처럼 소리 없이 흩어졌다.
네이트는 사병들을 위한 유일한 복지시설 중 하나인 브릿지의 창으로 시커멓게 번쩍거리는 우주를 바랍왔다. 빌어먹을 웜홀. 좇같은 행성 먼지들. 그렇게 온갖 감정이 낱말의 형태로 의식 위로 떠올랐다 사라졌다. 픽은 문득 베아트릭스로 각성한 뒤 찾아갔던 테임닥터의 말을 떠올렸다. 그는 인지가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원시적인 형태라고 말했다. 처음 O펙터를 투여받던 날 픽도 그 의견에 동의했다. 감정에서 생겨나는 모든 반응, 그러니까 화끈거리는 얼굴이라던가, 알 수 없는 울렁거림, 달아오르는 눈가, 무언가가 울컥하고 올라오는 목구멍의 느낌 따위가 배제된 감정이란 건 초등학교 애새끼의 그림 카드에 그려진 단순화된 그림 만큼의 진실성도 없었다. 그런 것들을 느껴 본지도 오래전이었지만 픽은 차라리 이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베아트릭스였고, 베아트릭스가 감정적 폭풍에 휩쓸리는 것처럼 위험한 일은 없었던 것이다.
베아트릭스는 극단적인 힘을 가진 초능력자로 사춘기 이전에 발현하는 것이 보통이며 피에 기생하는 일종의 바이러스가 변의의 원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빌어먹을 조그만 생명체는 숙주의 감정에 반응해 일을 쳤다. 손에서 불도 나오고 얼음조각도 날아가고 토네이도도 생겨나고 했다. 즉 모든 개체마다 발현 양상이 달랐다. 공통점이라면, 하나같이 섬세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었다. 교통사고로 아이를 잃은 잠재적 베아트릭스가 각성과 동시에 마이애미를 날려먹은 사건은 그 중에서도 최악의 사태에 속했다. 제어는 원칙적으로 불가능했다. 아무리 자제심이 깊은 사람이라도 그것은 표현해 한하는 것이지 감정 그 자체를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인간 시한 폭탄. 게이들에게 붙은 수많은 오명에 비하면 별로 치욕적일 것도 없는 별명이었다. 어쨌든 발현자의 99%가 남성인 베아트릭스들은 게이와 함께 2세기 넘게 인권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었다. 공공연하게 베아트릭스를 상대로한 마녀사냥이 허용되던 시기도 있었지만 세상은 원래 남에 일에 관심많은 멍청이들에 의해 돌아가게 되어있는 것이다. 인권운동가들은 돈 못받은 창녀처럽 집요하게 권력자들의 좇을 빨아댔다. 마침내 군대가 움직였다. DADT는 베아트릭스와 게이를 공평하게 아우르는 군의 규정이었고 나다니엘 픽을 이 똥같은 상황에 밀어넣은 원인이기도 했다.
"LT."
"거니. 브랫에게 반품 기간을 묻는게 좋겠어."
"괜찮으십...."
"응."
말이 끝나기도 전에 픽이 대답했다. 이름보다 거니라는 애칭이 익숙한 마이크 윈 중사가 특유의 시선으로 픽을 바라보았다. 픽에게서 추가적인 설명을 얻어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는 방법이었고 이번에도 성공적으로 작용했다.
"테임닥터의 처방대로 일어나자마자 O펙터를 정맥주사로 투여했어. 감정적인 동요는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없으니 괜찮지 않을 이유도 없다는 뜻이야. 있어서도 곤란하고."
"어쩌실 겁니까?"
"남자와 좇질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거니를 택하지는 않을게."
불명예 제대를 암시하는 농담이었지만 마이크는 웃지 않았다. 베아트릭스 조크는 거지같군. 픽은 생각했다. 가지고 있는 선택지가 지나치게 적었다. 해병이 된 이후 단 한번도 충분한 선택지를 가져본 적은 없었지만 정말이지 이만큼 엿같았던 적도 없었다. 우주 함선인 것이다. 좁은 함선내에 정상적인 사내놈들 여럿을 풀어놓은 것 만으로 충분히 위험한데 감정에 따라 도시 하나도 날려버릴 수 있는 초능력자가 동승한다는건 말도 안되는 개소리였다. 오란쉐의 혈액을 정제한 O펙터가 실용화 된지도 100년이 넘었지만 99%의 피임률을 자랑하는 콘돔을 뚫고 아기가 태어나는 것처럼 베아트릭스가 싸질러 놓을 수 있는 파괴와 죽음의 공포는 불신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소대원들은 그 불신을 이겨낼 만큼의 신뢰를 보였다. 픽은 그걸로 충분하다고 여겼다. 그에겐 계약한 오란쉐가 있었다. 콜버트 비롯한 소대원들이 해병다운 태도로 들여온 '스네이크'를 생착시킬 수 없는 몸이란 의미였다.
"LT. 불명예 제대의 다양한 방식 외에 다른 선택지는 생각해 보신 적 없습니까?"
"명예 제대를 할 적절한 방법이 지금으로선 떠오르지 않아."
"......."
"O펙터는 30일 분량이 남아있어. 원래대로라면 충분하고도 남을 분량이지만 웜홀 폐쇄 임무에 차출될 경우 얼마동안 함선 안에 머물러야 하는지 불투명해져. 이런 상태로 내 소대와 함께 있을 수는 없어."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DADT규정에 따라 중대 지휘본부는 나다니엘 픽의 사적인 문제- 베아트릭스란 성향을 고려할 의무는 없었다. 그러나 지휘본부라면 자신의 해병을 어디에 활용하는 것이 적절한 지는 알아야 하는 것이다. 아니 적어도 어디에 활용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지 정도는 알아야만 했다. 베아트릭스를 기한없이 우주에서 대기해야 하는 임무에 배치하는 것은 폭탄을 가득실은 우주선에서 불꽃놀이를 하는것과 비슷한 멍청이 짓이었다.
"LT. 무례한 질문인건 알지만 LT의 오란쉐와..., 그러니까 어떤식으로든 접촉할 수는 없습니까?"
"특급 우편으로 받을 수는 있어."
"...Pardon. sir?"
"가장 최근에 업데이트된 의료 등급 기준으로 봤을 때 인간 이하의 판정을 받을거야. 따라서 특급 우편으로 이송받는게 가능해." 물론 손상 가능성이 높아지니 취급 주의 표시를 붙여야겠지-따위의 생각을 곰씹으며 픽이 대답했다.
"오는데 걸리는 기간이 어느 정도 입니까?"
거니의 질문에 픽의 눈썹이 미묘하게 움직였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냔 뜻이었고 거니 또한 그 의미를 파악했지만 굳이 말을 덧붙이진 않았다. 거니는 진심이었다. 그들은 우주에 있었다. 거기다 조만간 모함으로부터 30광년은 떨어진 웜홀에 홀로 파견될 예정이다. 이 험비-소셜 크루즈만도 못한 거지같은 비행선을 타고 말이다. 이 비행선에 유일하게 좋은 자원이 있다면 그것은 타고 있는 마린들 뿐이었고 그 중에서도 픽은 대체불가능한 자원에 해당했다.
"내 오란쉐가 오면. 그럼 어떻게 할 생각이지?"
"아시다시피 여유공간이 조금 있습니다."
"없어."
"미사일 선적량에 문제가...."
"없어."
픽이 다시 한 번 대답했다. 병신같은 그의 상사는 사칙연산을 함에 있어서도 문제를 터트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픽은 그 부분에 대해서 숙지하고 있었고 자신이 소대를 떠나기 전 해야 할 일이 바로 이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든 채워 넣는 것이라 여겼다. 여기까진 문제가 없었다.
"거니. 아무래도 내가 내 소대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있는 모양이군."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똑바로 서 있던 픽의 머리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뇌가 있는건지 의심스러운 마더퍼커 새끼가 잘못 계산한 미사일의 수. 부드러운 경로로 채워넣은 무기. 거니도 알고 있어야했다. 공개 네트워크를 이용한 인터넷 쇼핑은 픽의 전문분야가 아니었다. 그는 그저 부드러운 루트를 암시하는 약간의 서류를 준비했다. 그 외의 부분을 처리한 것이 누구인지 알아낼 필요는 없었다. 때 맞춰 상자가 도착한 것이 중요했을 뿐이다. 때 맞춰....
"미사일이 아니었군."
"이제 스네이크는 필요 없지 않습니까."
"SOP에 따르면 독립 임무를 나가는 각 함선은 적어도 한 대 이상의 스네이크는 배치하여 만약의 폭주 사태에 대비하도록 되어있어."
말을 하면서도 헛소리라고 느꼈다. 아니 헛소리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빌어먹을 O펙터를 탓하며 욕지기를 내뱉으면서도 낭패감은 없었다. 느끼지도 못할거라면 왜 끊임없이 생각하게 되는 걸까. 문득 피곤함을 느꼈지만 그것도 고작해야 버석하게 마른 단어일 뿐이었다. 거니가 말없이 픽의 무표정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픽은 부담감, 미안함, 고마움. 따위의 단어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걸 방치했다. 침묵은 부담스럽게 길어지고 있었고 둘 다 비효율적인 것이라면 질색을 하는 사람들 이었다.
"오늘 21시 전까지 결정하지."
픽이 더이상의 참견을 거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거니는 머리속으로 출전시간과, 픽이 정한 데드라인 사이의 간격을 생각했다. 픽은 허튼소리를 하지 않았다. '결정하지'라는 말은 아직까지 결정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있다는 의미였고 그건 21시 전에 결정을 내릴 경우 픽의 오란쉐를 함선으로 소환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 시간 범위 안에 있는 거주 행성은 수가 많지 않았다.
"어떤 결정을 내리시건 원망하는 사람은 없을겁니다."
"알아."
거니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브릿지를 빠져나갔다. 21시까진 약 2시간의 여유가 남아있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브릿지 폐쇄용 패널 옆에 기대서 있던 콜버트가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거니는 움직일 수 없었다. 이 빌어처먹을 고물 우주선의 주포보다 훨씬 공격성이 높아 보이는 콜버트의 시선 때문은 아니었다. 최대 36개월의 독립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디자인 된 우주선의 특성이 문제였다. 어쨌든 선원들이 서로에게 질려 미쳐버리거나 독안에 든 쥐처럼 공격성을 드러내지 않도록 최소한의 개인 공간을 갖춰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그 외의 공간- 거주구역의 통로 같은 곳은 한계에 다다를 정도로 좁아질 수 밖에 없었다. 콜버트는 당연히 그 사실을 십분 활용하고 있었고 거니는 한숨을 내쉬며 그의 소대장이 한 말을 전달하였다.
"축객령이네. 21시까지."
"멋지군요. 빽빽거리며 아빠 어디갔냐고 징징대는 꼬꼬마들을 3시간동안이나 달래줘야 한단 말입니까?"
"자네가 자애로운 어머니가 될 차례겠군."
"앞치마가 없는게 아쉽군요. 그렇게 차려입은 전 완벽한데 말이죠."
대화의 수준이 점점 낮아지자 거니는 별다른 대답없이 손을 흔들며 콜버트를 지나쳤다. 콜버트는 그 자리에 남았다. 잠시 굳게 닫힌 브릿지의 문을 노려보며 그는 스스로의 초조함을 애써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실패였다. LT가. 당장 내일부터 민간인이 되어 외계인 년들이랑 그짓하는 히피들 사이로 숨어드는 것과 이곳에 남는 것 사이에서 무려 선택이란걸 할 수 있다는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충격적이었다.
오란쉐. 베아트릭스와 비슷한 시기에 갑자기 나타난 이들 역시 혈액에 기생하는 특별한 바이러스가 원인이었다. 다만 장르가 좀 달랐다. 베아트릭스가 싸구려 슈퍼히어로물이라면 오란쉐는 러브코미디였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을 전달받을 수 있었고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전달할 수도 있었다. 뭐 영화였다면 달달하게 연애 좀 하다 침대에서 끝났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녹치 못했다. 각성한 오란쉐는 조건만 충족하면 교미에 접어든 개새끼의 성욕에도 반응했다. 그때 오란쉐에게서 직접 체취한 혈액을 정맥주사로 투여할 경우 동물이 느끼는 강렬한 성감을 그대로 전달 받을 수 있었다. 인간 마약. 그게 그들의 별명이었다. 실제로 오란쉐들만 전문적으로 납치한 뒤, 내장기관과 뇌만 살려둔 채 쾌락 중추에 전극을 꽂아 흥분한 상태에서 체취한 혈액을 비싼값에 정제에 팔아넘기던 엽기적인 범죄단이 적발된 일도 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일단 오란쉐로 각성한 뒤 정상적인 사회생활 같은건 아예 불가능하다고 보는게 좋았다. 지하철 바퀴벌레의 성생활에도 질질 싸는 판에 사회생활이랄 것이 있을게 뭔가. 그러나 다행이도 베아트릭스와 오란쉐가 우연히도 섹스를 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세상에서 핍박받는 두 돌연변이가 어쩌다 그런 기특한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결정이 두 장르의 돌연변의들을 구해냈다. '각인'이었다.
"브랫! 어떻게 나한테 그럴수 있어요! 이 악날한 유태인 착취자 새끼 같으니라고! 그. 뭐. 오 씨발! 오란쉐인지 뭔지 하면.. 그러니까 그건... 그거잖아요!!"
"레이. 개소리를 할때에도 최소한의 룰이란게 있다. 적어도 너 스스로는 그 말을 이해하는 수준이어야 하지 않겠냐."
"젠장 브랫~! 난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요! 당신이 이 좋은 친구 레이레이에게 LT일 까맣게 숨기고 어디서 순금 좀 구해와라 했을때 제가 뭘 했는지 기억도 못할거라면 그 빌어먹을 호모같은 입에 좇이나 쳐넣고 침이나 질질 흘리는게 나을걸요!"
레이가 양팔을 벌린채 항변했다. 그나마 트럼블리의 몸에 부딪쳐 오른쪽 팔은 벌리는 시늉만 한 상태였다. 콜버트는 대화를 포기하고 사내놈들로 득시글 거리는 자신의 선실을 빠져나왔다. 시끄러운 항의 소리가 두터운 선실 벽에 막혀 수그러들었다. 팀러더인 그의 선실은 다른 상병들에 비해 그나마 넓은편이었고 덕분에 브릿지를 빼앗긴 브라보 소대원들은 당연하다는 듯 그의 선실에서 버글거리고 있었다.
[최종 논문을 제출 못하고 있어.]
그러나 좁은 복도에서의 시간도 길게 이어지진 않았다. 흔한 콜사인도 생략한 퉁명스런 목소리가 외이에 이식한 통신기를 통해 전달되었기 때문이었다. 왜 당연하다는 듯 나에게 이야기를 하는건가-라고 생각했지만 콜버트는 최대한 이성적인 목소리로 응대하려 노력했다. 이 소대의 유일한 군의관인 브라이언은 현재 이성을 유지하기 힘들 정도의 심각한 수면 부족현상을 겪고 있었다. 군용 인트라넷으로 6개월 짜리 테임닥 자격증 코스를 일주일만에 해치우려고 하면 흔히 맛볼 수 있는 현상이었다.
"데드라인이 몇시라고 했죠?"
[지구 시간으로 2시간 후.]
"아슬아슬 하군요. 결정은 21시까지 내려주신다고 했습니다만."
[좀 빨리 내려 달라고 해.]
그대로 연결이 끊어졌다. 젠장. 젠장. 콜버트는 자신의 꼴이 퍽 우습다고 생각했다. 그는 소대의 그 누구보다, 심지어 군의관 보다 LT의 '특성'을 먼저 알아차린 사람이었다. 물론 소대의 그 누구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브랫! 이대로 가다간 분홍색 튀튀를 입고 발레하는 당신 꼴을 보게 될것 같다니까요! 그냥 받아들여요! LT도 평범하게 여자 거기 빨고 싶어하고 가끔씩 불건전한 망상을 하면서 자위 할거라는걸 좀 받아들이란 말이에요!]
레이의 생각과는 달리 콜버트도 그 정도는 받아들이고 있었다. 다만 그가 가진 베아트릭스에 대한 인식이 평범한 마린들보다 조금 못한 편이란게 문제였다. 다시말해 그는 베아트릭스를 개새끼에게도 발정한다는 미친 돌연변이로 보고 있었다. 여러모로 보나 LT에게 어울리지 않는 수식이었다. 레이는 몇번에 걸쳐 팀리더가 가진 LT에 대한 종교적 믿음을 깨트리려 시도했다. 순전히 닭살이 돋아 죽을것 같은 스스로를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실패는 정해진 수순이었다. 그건 어느 순간 부터 농담거리로도 올라오지 않게된 부분이었다. 남의 약점를 후벼야할 귓구멍 정도로 보는 이들에게 이것은 정말로 이례적인 일이었다. 누구나 알고 있었다. 아이스맨의 푸른 눈은 한결같은 방향을 향했다. 그 눈이 이른바 워리어 정신에 투철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을 때를 제외하곤 말이다. 그는 대체로 언제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지만 어쨌든 리컨마린으로서 훈련받은건 브랫 콜퍼트 뿐이 아니었다.
[브랫. 까놓고 말해 안 받아 들이면 어쩔거에요. 게이가 해병에 들어오는 시대라고요! 이 늙은 해병이 내 빌어먹을 유태인 팀 리더가 캬라멜 마끼아또나 쳐 마시는 호모란걸 받아들인 이후 해병대는 예전의 순결을 잃었어요. 여기서 소대장이 돌연변이란걸 받아들이는게 뭐 그리 이상한... 아 젠장! 지금 내가 받아들인다는 표현썼어요? 진짜 게이같네! 지금 당신 게이병이 나한테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뭐 좀 느끼는거 없냐고요!]
물론 콜버트도 자신의 문제점은 파악하고 있었다. 30분씩 끊어낸 3시간의 토막잠에서 깨어난 후 그는 영 도움이 되지 않는 레이의 말을 신속하게 무시한 뒤 브라이언의 관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픽의 특성을 일종의 해결해야 하는 문젯거리로 여겼다는 뜻이다. 사실 그런거라면 확실히 콜버트의 전문분야라고 할 수 있었다. 그에겐 언제나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재해 있었기 때문이다. 부족한 태양열 축전지. 부족한 선적 미사일. 부족한 대가리들의 신경 세포.
항상 그래왔듯 콜버트는 그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해결책을 내어놓았다. 스네이크는 현존하는 베아트릭스 제어수단 중 가장 효과가 높다고 알려져 있었다. 콜버트는 손수 그것을 제작했다. 직접 고안한 집적회로를 이용해 장비의 사이즈를 조금 줄였을 땐 성취감까지 느꼈다. 헐렁한 군복안으로 착용하면 그럭저럭 숨길 수도 있을 정도의 사이즈였다. 안정화 물질중 하나를 구하기 위해 미사일을 분해해 미량의 금속물질을 빼돌릴 때의 기분은 어떠했던가. 확실한건 지금보다 나았다는 거였다. 그때는 적어도 자신이 쓸모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지금은 달랐다. 완전히 달랐다. 그는 그의 베아트릭스 소대장을 찾아가, 소대에 남기로 결정할 경우를 대비해 군의관이 테임닥터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게끔 30분 일찍 결정을 내려달라고 말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Sir.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들어와.]
"질문도 하나 있군요."
[해.]
"제가 브릿지 앞에 있는거 어떻게 알았습니까?"
대답대신 픽은 웃음을 터트렸다. 의도와는 다르게 짧고 메마른 웃음이었고 픽은 웃기를 포기했다. 침묵이 흘렀다. 대답을 기다리던 콜버트는 들어가기로 마음 먹었다. 꼭. 굳이. 들어갈 필요는 없었다. 사실 원래 계획도 괜히 방해할 것 없이 간단하게 통신기를 통해 필요한 사실을 전달하고 말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몸은 하릴없이 브릿지 앞까지 움직여 왔고 픽의 한마디에 냉큼 자신의 위치를 고해바치기 까지 했다. 이제와서 돌아선다는 건 좀 비겁하게 느껴졌다. 당연히 잠겨있을거라고 생각한 브릿지의 문은 open버튼을 누르는 것만으로 간단히 열렸다.
문이 열리고 익숙한 장신의 몸이 다가오는 동안 픽은 창가에 선 자세 그대로 움직이지도, 시선을 주지도 않았다. 다짜고짜 축객령을 내리더니, 어디있는지도 명확하지 않은 사람을 들어오라 한 것 치곤 무심한 태도였다. 콜버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웃다가 마는 건 저에게서 전략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겁니까? O펙터를 맞으면 효과가 다하기 전까지 아무런 감정도 못느낀다고 하던데요. 웃음이 나올정도면 새걸 맞는게 낫지 않겠습니까? 솔직히 소름끼치는군요."
"난 외이에 통신기를 삽입하지 않았고 돌출형 통신기를 이용할 경우 동일 기종의 장비가 다가올 경우 미미한 잡음이 섞이게 돼. 질문에는 대답했으니 드릴 말씀을 듣고 싶군."
물론 콜버트도 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외이에 반 영구적인 통신장비를 삽입하기 전 직접 외부 통신장비를 이용해 실험해 보기도 했다. 잡음을 통해 아군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면 편리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결론은 토끼로 다시 태어나기 전엔 저게 쓸모있을 일은 없다는 것이었다. 아주 주의를 기울이면 구분할 수 있었지만 신경이 분산되는 위급상황에선 무리였다. 잡음의 크기는 아주 작았다. 픽 중위는 토끼임이 분명했다. 콜버트의 침묵이 생각보다 길어지자 픽의 한쪽 눈썹이 들려올라갔다. 콜버트가 기계적으로 입을 열었다.
"30분. 적어도 15분 정도 일찍 결정을 내려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왜?"
"군의관이 자격증을 따려면 최종 논문을 전송해야 하는데 아시다시피 이곳 통신 상태가 그렇게 좋지는 않습니다."
"이해를 못하겠군."
"그러니까...."
당신이 베아트릭스라는 걸 알고, 혹시나 미쳐 날뛰게 될 때를 대비해 브라이언이 일주일 전부터 테임닥터 과정을 듣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 없었다. 픽 중위를 위해 만들었던 스네이크가 무용지물로 밝혀진 지금 모든 것이 당신을 위해서였다고, 이 끔찍한 사생활의 침해를 이해해야 할 뿐 아니라 예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소대에 남아야 한다고 뻔뻔하게 말하는건 지독한 위선으로 느껴졌다. 콜버트는 처음으로 자신의 소대장이 이 상황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지에 대해 생각했다. 숨겨운 치부.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했을 나날. 갑자기 깜짝선물마냥 도착한 베아트릭스 전용 장비. 해병의 기준으로 보더라도 이건 엿을 먹이는 것에 가까웠다.
"하사. 난 탓하자는게 아냐."
한참만에 입을 연 픽이 말했다.
"왜 탓하지 않습니까?"
"뭘 탓하라는 거지?"
픽은 정말로 묻고 싶었다. 무엇을 탓해야 하는가? 베아트릭스란 걸 알아차린 것? 스네이크를 준비한 것? 아무런 선택지도 없을 거라고 여긴 상황에서 희망을 보여준 것? 콜버트가 하려던 말을 막은 눈짓으로 막은 픽이 다시 한 번 설명을 요구했다. 콜버트는 건조한 태도로 군의관이 베아트릭스의 의료적 상황을 책임지기 위해 테임닥터 자격증 과정을 듣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6개월 코스이긴 하지만 엄연히 SR훈련과정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코스를 수료하기 위해선 소논문을 제출해야 한다고 했다. 픽은 몇일 전 브라이언이 매우 뻔뻔한 태도로 자신에게 혈액과 소변을 요구하던 상황을 떠올렸다. 아마 소논문의 제목은 우주 함선에 탑승한 베아트릭스의 혈중 B펙터 변화 정도가 아니었을까? 대기중이라고 해도 출전을 코앞에 둔 상황이였다. 해야할 작업은 산적해 있었을 터다. 6개월짜리 의료 과정을 일주일만에 수료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롭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그냥 지금 논문 보내고 과정 수료하라고 해."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 고생을 하고 자격증도 못받으면 억울할 것 같은데."
"중대 전체가 알게 될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베아트릭스란걸 말이지."
무의식중에 콜버트가 생략한 주어가 픽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콜버트는 어딘가 깨진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알았어."
픽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돌아선다. 끝. 대화종료. 축객령. 콜버트는 무의식중에 픽의 어깨를 잡았다.
"Sir. 대체 어떻게 하고 싶은 겁니까. 이런걸 원하고 스네이크를 보낸게 아니었습니다. 단지...,"
"브랫."
"이제와서 믿어 달라기도 뻔뻔하지만 이게 당신을 엿먹이기 위한 질나쁜 장난 같은건 결단코 아니었단 말입니다."
갑자기 튀어나온 진심에 픽은 대체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오해를 풀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픽은 물론 자신에게 전달된 스네이크 장비를 질나쁜 장난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그러기엔 너무 고가의 물건이었고 엿을 먹이자면 더 좋은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알아."
"... 그럼 대체 뭐가 문젭니까."
뭐가 문제냐고.
픽의 눈동자가 순간 허공을 더듬었다. 알리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저 그 뿐이었다. 베아트릭스인걸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브랫이 생각하는 것처럼 기계 하나로 제어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고, 브라이언의 생각처럼 지속적인 관리와 치료를 통해 극복할 수 있는 질병도 아니었으며, 하물며 대다수의 상병들이 생각하는 것 같은 괴이쩍은 성격적 결함 따위는 더욱더 아니었다.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게 불가능 하다면 차라리 떠나고 말겠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문제는 없어 하사."
내 오란쉐가 교통사고로 팔다리가 잘려나간 채 식물인간이 된 17살짜리 여자애라는 것? 그애를 주기적으로 강간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 강간당하는 여자애의 목에 두툼한 주사기와 전기 펌프가 꽂혀 있다는 것? 내 좇이 여자애의 다리 사이를 드나드는 사이 윙윙거리는 소리와 함께 빨려나가는 피를 멍하게 바라본적도 있었다는 것? 이곳에 오기 위해선 가능한 많은 양의 O펙터가 필요했고 일주일의 휴가 동안 여자애는 거의 치사량에 가까운 피를 잃어야했다는 것? 어느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인지 픽도 알지 못했다. 문제가 아닌 것이 없었고 따라서 그는 그저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해결할 수 없는 것들 뿐이었다. 콜버트는 거의 상처를 입었다는 것에 가까운 표정으로 잘됐군요 따위의 말을 중얼거렸다. 픽은 순식간에 고통스러워 졌다. 홀로 남은 뒤에도 고통은 머릿속에서 수그러들지 않았으나 그의 몸에 흐르는 피가 그것을 느끼도록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방법으로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소지하고 있는 군용 나이프로 솜씨 좋게 팔목을 그은 픽이 손톱으로 상처를 헤집었다. 결정을 내리기까지 1시간도 채 남아있지 않았다.
"yo 브랫. 너네 애들이 니 선실에서 미친짓 하고 있던데."
"......."
"...너도 좀 하지 그래?"
에스페라가 검은 얼굴에 사뭇 진지한 표정을 떠올린 채 제안했다. 콜버트는 말없이 걷기만 했다. 에스페라 역시 속도와 방향을 유지했기 때문에 그 둘은 곧 물리적 한계에 부딪치게 되었다.
"문 안잠겨 있더라."
좁은 통로에 마주본 채로 기묘한 대치상태를 유지하던 콜버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뜬금없는 소리에 잠시 인상을 찌푸렸던 에스페라는 그것이 곧 해산을 명령한 소위와 관련된 이야기란 걸 알아차렸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미련하게 거길 또 왜 기어들어갔냐란 것이었다. 말은 안했지만 표정으로 충분했는지 콜버트가 히죽하고 웃어보였다. 미친새끼가. 그가 보기에 콜버트는 요 근래 정상이 아니었다. 사실 소대에 있는 누군들 안 그러랴 싶긴 했다.
그들이 타고온 우주 함선의 정식 명칭은 HUM-322431B. 통칭 험비라고 불리는 중형 수송선이었다. 뭐 수송선입네, 소셜 크루즈네 오명이 많았지만 사실 나쁜 우주선은 아니었다. 미사일을 실을 수 있었고 빌어먹을 외계인의 엉덩이에 기념할 만한 한방을 날려줄 수도 있었으며 항성간 이동도 가능했다. 그러나 모빌 수트를 실기엔 너무 작았다. 콜버트의 존중할 만한 계산에 의하면 고작해야 5대가 한계였다. 그럼 그만큼만 실어서 돌려 쓰면 되지 않냐는 보급 중대의 개소리에 그들은 하나같이 웃으며 좋은 아이디어라는 식으로 반응했다. 어차피 모빌 수트는 조립과 정비, 수리와 폐기까지 리컨 마린 내부에서만 이루어졌다. 모름지기 해병이라면 아무리 멍청한 신병이라도 423개의 주요 부품을 체크해 자신의 몸에 꼭 맞는 모빌 수트를 제단해 낼 수 있어야 했다. 그러니까 이론적으로 말해서 보관된 상태의 모빌 수트를 피팅된 상태로 바꾸기 위해선 리컨 마린 한명과 24시간이 필요했다. 24시간 이었다. 초기화를 위한 12시간과 피팅을 위한 12시간.
아이스맨이 세운 9시간의 피팅 기록을 8시간 40분으로 단축한 것이 LT였다. 한동안 LT의 T는 테일러의 T라는 개소리가 유행한 적도 있었지만 이런 초유의 사태에서야 8시간 40분이건 9시간이건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소대는 나름대로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애썼다. 일단 시급한건 함선을 운전할 인력을 자체적으로 길러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들 운전면허 정도는 가지고 있었으나 항성간 이동이 가능한 함선을 운행하는 건 다른 문제였다.
"갓! 뎀잇! 지금 그게 나한테 할 소리에요?! 내 뇌는 고등학교때 이후 아무도 손댄적 없는 순결한 처녀지라고요! 그 연약한 곳에 저 빌어먹을 험비의 굵고 뜨거운걸 박아넣겠다니! 오 씨발. 브랫! 차라리 내 엉덩이에 당신걸 박고 말겠다고요!"
레이 만큼은 아니었지만 릴리와 브랫도 각각의 이슈에 대한 거부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사실 아무도 공군처럼 머리에 구멍을 뚫어 함선과 다이렉트로 전자신호를 주고 받고 싶지는 않았다. 그들 또한 최첨단의 과학 기술로 전쟁을 수행하는 이들이었으나 최소한의 자부심은 있었다. 모빌수트는 결코 인간의 탑승 없이 움직일 수 없는 물건이었다. 그들이 보기에 공군조종사 라는 건 모빌 수트에 달린 423번째 부품 같은 것이었다. 망가지면 곤란하니 소중하게 관리하지면, 결국은 갈아끼우면 그만인 부품. 심지어 현존하는 모든 군사 기술에 관심과 애정이 지극한 콜버트 조차 그런 의견에 지지를 보내고 있는 형편이었으니 이러한 반응을 놀랍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결국 시간이 더 걸리는 길을 택하는 수 밖에 없었다. 군의 방대한 강좌 리스트를 헤매이며 지금부터 잠들지 않는다면 이걸 다 들을 수 있기는 할까 따위를 고민하던 레이와 릴리에게 신청한 적도 없는 외출 허가가 떨어진건 정확히 출전을 92시간 압둔 때였다. 어영부영 외출증을 수령하러 간 둘에게 픽은 민간 군수 업체에서 개발한 최면암시 코스의 팜플렛을 건네주었다. 등록이 끝난 상태였다. 동봉된 안내서에 따르면 하루 8시간 이상의 학습은 권장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었으나 아무도 그런것은 신경쓰지 않았다. 레이는 각성제를 물처럼 퍼마시기 시작했다. 다들 괴로워졌다. 그러나 부대에 복귀한 레이가 험비의 뜨겁고 굵은 것을 쥔채 조정을 시작하자 초반의 고통은 차라리 감미로운 것으로 밝혀졌다. 어쨌든 무사히 도착한 두명의 신입 조종사와 달리 최면암시 코스의 빌어먹도록 비싼 수강료 고지서는 결코 도착하지 않았다. 거니는 별다른 말 없이 세금 공제 해택이라도 받아보는건 어떻겠냐는 의견을 제시했다. 당시 막 소대에 부임해 서류더미에 파묻혀 있던 픽은 물끄러미 거니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거니는 그가 불러주는 고유 거래 번호를 적는대신 암기했다. 쓸 일이 자주 있을리란 판단 때문이었다.
"모빌 수트 보러 갔나?"
한참 상념에 빠져있던 에스페라는 한발 늦게 콜버트의 질문에 반응했다. 갑작스럽게 대화의 주제가 바뀐 것도 같았으나 꺼냈다가 본전도 못건진 LT이야기 보다야 훨씬 편안한 주제였기에 에스페라는 기꺼이 새로운 주제에 뛰어들었다.
"아. 잠깐 보고 왔어. 너네 팀도 시간날때 조정 좀 해두는게 나을 것 같은데."
아니면 잠이라도 자던가. 콜버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여분의 부품 수급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했다. 에스페라도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그렇다. 지금 험비에는 마땅히 있어야할 숫자의 모빌수트가 실려 있었다. 운전병 문제를 해결하자마자 픽이 시작한 모빌 수트의 경량화 개조 덕분이었다. 에스페라는 지금 생각해도 미친것 같았던 당시의 상황을 떠올렸다.
"모빌수트 경량화 작업을 할까 하는데 아이디어를 듣고 싶군."
레이가 들었으면 브랫을 뛰어 넘은 또라이가 나타났다며 3박 4일을 떠들 개소리였다. 이번만큼은 에스페라도 별다른 이의가 없었다. 출전을 92시간 남겨놓은 상황에서 태연한 얼굴로 헛소리를 하는 애송이 장교를 한두번 본것은 아니었으나 이정도 스케일로 좇뺑이를 돌리는 병신은 또 처음이다. 콜버트는 에스페라보다 조금 더 모빌 수트에 정통해 있었고 생각만으로 그치지 않았다.
"다함께 왼팔을 잘라내는게 좀 더 현실적인 대안이란 생각이 드는군요."
"하사의 현실성은 나와는 좀 다른 모양이군."
"그런것 같습니다. sir."
"한쪽 팔의 무게는 통계적으로 보았을때 전체 몸 무게의 4.3%에 해당해. 소대 전체가 양팔을 자른고 해도 모빌 수트 하나 실기 어려울것 같은데."
"그렇군요."
콜버트는 이제 웃고 있었다. 그러나 이빨을 드러낸 특유의 웃음은 곧 멈추게 되었다. 에스페라는 그때 이후 오고 가는 영어의 절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창피하진 않았다. 여긴 굶주린 해병들로 가득한 마틸다 우주기지였지 빌어먹을 MIT가 아니었다. 어쨌든 확실한 건 아이스맨이 중위에게 실시간으로 뻑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싸늘하게 가라앉아있던 그의 푸른 눈이 부담스럽게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에스페라는 차마 소리는 내지 못한 채 몇번이고 외쳤다. 게이다. 게이가 나타났다. 어쨌든 픽의 아이디어는 그럴싸 했다. 그는 대담무쌍하게도 리컨 마린용 모빌수트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통신장비와 관측 장비를 모두 제거할 것은 제안하고 있었다.
리컨 마린이라면 누구나 모빌 수트와 열병같은 사랑에 빠지는 시기를 거치게 된다. '그녀'와 자고 그짓까지 하는 사병에 대한 소문을 안 들어본 훈련병이 드물었고 심지어 브랫 콜버트 조차 그러한 사실을 진지하게 믿던 시기가 있었다. 눈치챘겠지만 훈련소에선 '그녀'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과 신뢰를 권장한다. 어차피 첫 출전을 마지막으로 사그라들게 될 감정임을 알기 때문이다. 한번의 포격으로 온도 조절 장치, 혹은 산소 탱크, 최악의 경우 압력 조절기가 망가져 산 채로 그녀의 몸안에 갖힌채 죽는 동료를 보는 것은 훈련소를 갓 나온 애송이을 제대로 된 병사로 바꾸기 위한 마지막 단계였다. 해병들은 그러한 종류의 죽음에 '복상사'란 별명을 붙였다. 그리고 보다 비현실적인 존재, 그러니까 섹시한 여자라던가 귀여운 여자 때때로 그저 여자란 존재에 열병을 느끼는 비참한 상태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브랫 콜버트는 예외였다. 그는 입대한 이후 한번도 쓰지 않은 휴가를 철의 여인에게 바쳤다. 아직까지 그녀와 그짓을 하며 오르가즘을 느끼는 상태인것 같았다. 그리고 에스페라의 의견을 덧붙이자면, 콜버트의 괴벽은 LT와 만남으로서 이제 마니악한 3p로 접어들어 있었다. 소대원들은 이제 그 건에 대해 농담하기조차 귀찮다는 의견이었다. 그들은 423개의 조정 가능한 부품을 포함해 건드리지 않는 것이 신상에 좋다고 주입받은 전체 회로를 들쑤셨고 거기서 의사 신경계의 일부분을 분리해내는데 성공했다. 실험체를 자청했던 콜버트는 두번이나 복상사를 당할질 뻔 했고 콜버트가 쪽잠을 자는 사이 단 한번의 탑승을 시도한 레이는 얼굴 반쪽에 뜨거운 키스를 받았다. 픽은 이 불미스런 사태를 유연하게 넘기는 지혜를 보임으로서 레이의 마음을 얻는데 성공했다. 그게 과연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13대의 모빌수트를 실을 수 있게 되었다. 픽은 16대를 실으라고 했다. 출력이 부족할 거란 거니의 지적에 그는 세이프티 마진을 언급했다. 과거 우주 함선 운용의 불확실성이 훨씬 높았을 시기, 여분의 출력을 남겨둔채 질량 제한이며 활동 계획을 세웠던 전통이 지금껏 남아있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모든 함선은 정해진 적정 용량보다 훨씬 많은 용량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다만 이 세이프티 마진이란 것 자체가 관례적인 것이었기에 마진을 정하는 스탠다드 따위는 없었고 함선마다 제각각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픽은 모든 함선의 세이프티 마진을 암기하고 있었다. 콜버트는 이제 거의 오르가즘을 느끼는 것 같았다. '재량적으로' 중량 문제를 해결한 그들은 남은 10시간을 피팅에 사용했고 대다수의 마린들이 자신의 최단 피팅 기록을 갱신할 수 있었다. 뭐 그런 보람도 없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출격 시기는 한없이 늘어지고 있었지만 말이다.
"어이. 넌 할만큼 했어."
에스페라가 자신의 선실로 들어가기 전 한마디 했다. 콜버트는 잠시 그를 응시하더니 아무런 제스쳐 없이 걸어갔다. 에스페라의 시선이 잠시 동안 동료의 등을 쫓았다. 그는 고개를 젓고는 선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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